프롤로그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감추고, 세상의 먼지와 하나 된다
이름을 받던 날
4평짜리 혼거방이었다.
여름이었다. 수감자가 스무 명 가까이 됐다. 4평 방 안에 스무 명. 그 숫자를 읽는 것과 그 안에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누울
자리가 없어서 몸을 옆으로 세워 잠을 잤다. 한 사람이 뒤척이면 옆 사람이 깼다. 옆 사람이 깨면 또 그 옆 사람이 깼다. 밤새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냄새가 있었다.
생선이 썩으면 냄새가 난다. 그것을 소금에 절이면 젓갈이 된다. 스무 명의 땀이 4평 밀폐 공간에서 발효되면 그 젓갈 냄새가 났다. 사람이 사람을
절인 냄새. 처음 며칠은 그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한 달이
지나자 그 냄새가 익숙해졌다. 내가 그 냄새의 일부가 됐다는 뜻이었다.
2015년 겨울. 두 번째 수감이었다.
구속 영장이 집행된 것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세 가지를
했다. 먼저 방의 온도를 가늠했다. 그다음 벽 쪽 빈자리를
찾았다. 마지막으로 무릎을 껴안고 눈을 감았다. 생각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래도 생각은 밀려왔다.
믿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이었다. 술을 나누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놓은 덫에 걸려 이 방에 왔다.
분노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어느 밤이었다.
옆 사람들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오고 있었다. 복도 불빛이 문 아래 틈새로 조금 들어왔다. 그
희미한 빛에 기대어 손이 쌓아둔 책 쪽으로 갔다. 《도덕경》이었다.
56장에서 눈이 멈췄다.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얽힌 것을 풀고, 그 빛을 부드럽게 하고, 그 먼지와 하나
된다.
화기광(和其光). 동기진(同其塵).
옆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4평짜리 인간 정글의 한복판에서, 그 여덟 글자가 눈앞에 떠 있었다.
和其光. 빛을 부드럽게 하라. 그 빛을 감추라. 드러내지 말라. 증명하려 들지 말라.
同其塵. 먼지와 하나 되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먼지 속에 섞여라.
나는 언제나 빛을 원했다. 더 크게, 더 높이, 더
밝게. 그런데 달리면 달릴수록 무언가가 뒤에서 잡아당겼다.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졌다. 증명하려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그날, 스스로에게 호(號)를
하나 지어주었다. 아니, 지어준 것이 아니었다. 그 이름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화광동진(和光同塵).
스무 명 사이에 끼어 앉은
채로 받은 이름이었다. 젓갈 냄새 나는 방에서 받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더 단단했다.
* * *
내 본명은 주광현(朱光鉉)이다.
朱는 붉을 주다. 붉은 흙, 붉은 빛. 전라북도
김제 만경평야의 가을 흙 색깔이 그것이다.
光은 빛이다. 나는 평생 빛을 원했다. 가난이라는 어둠을 지우고 싶었다.
鉉은 솥귀다. 무거운 가마솥을 불에서 들어올리는 쇠로 된 고리. 없어서는 안 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 솥이 끓는 동안 아무도 솥귀를 보지 않는다.
무언가가 필요할 때에야 비로소 찾는 것.
朱光鉉. 붉은 흙에서 태어나, 빛을 향해 달리다가, 솥귀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짐을 든다.
그리고 화광동진. 빛을 감추고 먼지 속으로 들어간다.
그게 내 이름이 말해주는 삶의
경로였다.
* * *
이 책은 성공의 기록이 아니다.
이것은 살아남은 사람의 기록이다.
두 번 무너진 사람이, 두 번 다시 일어선 이야기다.
만약 당신이 지금 무너져 있다면, 포기하고 싶다면, 사람에게 상처받았다면, 세상이 등을 돌렸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
나는 그 길을 걸어봤다. 그러니 당신은 나를 따라오면 된다.
화광동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