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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부 배신의 비극 2015~2018년 "배신당해도, 그래도 사랑하리라." — 화광동진

자서전 · · 약 13분 · 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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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광동진(和光同塵) 프로젝트

8

배신의 비극

2015~2018

"배신당해도, 그래도 사랑하리라."

화광동진


 

52. 대질신문

검찰청 401. 이준혁과 대질신문이 시작됐다.

이준혁은 한결같이 자기는 직원이고 실질적인 사주는 나라는 것으로 밀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그러면 왜 자금 집행 결제를 네가 했냐?"

"그것도 광현이 형에게 보고하고 지시받은 겁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나올 수 없는 서류가 나왔다. 한재근 회장이 준혁이에게 안 주고 본인이 보관하겠다던 그 각서였다.

검사가 말했다. "본인이 실질적 사주가 아니라면 왜 이런 각서가 나옵니까?"

나는 이준혁을 봤다.

"이럴려고 그 각서를 요구했던 거야? 한재근 회장과 미리 짜고 연극했던 거야?"

"광현이 형... 나 때문에 성호 형 회사 짤리게 할 수는 없잖아."

"뭐야, 이 새끼야! 네가 원하는 대로 소개해주고 연결해준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검사가 끼어들었다. "여기가 어딘데 말싸움을 합니까."

검사의 눈을 봤다. 흔들리는 눈동자.

', 빠져나갈 수가 없구나. 외통수에 걸렸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미 결정난 카르텔의 방향을 돌릴 수 없겠구나.'

나는 그 이후로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준혁은 검사가 유도하는 대로 답변하고 서명했다. 피해를 준 것에 대해 반성한다는 말까지. 자백을 유도하는 그 질문의 맥락을 모르고.

나와 이준혁은 공범으로 기소됐다. 불구속 기소였다.


 

53. 10년의 약속이 깨진 밤

구속영장 심사 당일. 최경익 선배와 홍찬이, 임길중 변호사를 태우고 군산으로 갔다.

법정에서 많은 자료를 제출했다. 실질적인 대표자 행위는 이준혁이 했다는 것. 출금전표상 대표자 지시 서명이 이준혁의 것이라는 것. P스틸서비스와의 철자재 운용에 나는 관여한 바 없다는 것.

오후 12시쯤.

"주광현씨, 기각됐습니다. 석방입니다."

"감사합니다."

"통곡을 하거나 환호를 하거나 다들 두 가지 반응 중 하나인데, 무덤덤하시네요."

"그냥 쓸쓸하네요. 이런 처지가."

경찰서 밖에 최경익 선배가 성현이와 함께 있었다.

"밥은 먹었냐?"

"아니요.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요. 저의 지나온 세월이 너무 한심하고 슬프더라고요. 도움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도와줬더니 이렇게 등에 칼이 꽂히니. 다시는 사람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슬픕니다. 소주 한 잔 하고 싶네요. 담배도 한 개비 피우고 싶고."

", 너 술 담배 안 하잖아."

"그랬죠. 그런데 약속한 10년이 지났어요. 제 심적 스승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이 길이 맞는가 의심이 들고요. 슬프고 또 서글퍼집니다."

조촌동 포장마차 야식집. 안주도 안 먹고 깡소주만 마셨다. 10년 만에 먹은 술이 몸을 받아주지 않았다. 빈속에 빠르게 취했다.

그렇게 10년의 약속이 끝났다.

신앙과 믿음은 철저하게 깨졌다.

* * *

모텔에서 눈을 떴다. 머리가 먹먹했다. 샤워기 물이 차가웠다. 그런데 그 차가움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성현이가 문밖에서 소리쳤다.

"속은 괜찮아요? 고기도 못 먹으면서 왜 고기를 시켜놓고 깡술만 먹고 떨어져요. 마치 누구에게 반항하는 사람처럼."

"됐다. 고만해라."

시원한 해장국을 먹고 최경익 선배를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줬다.

"근간 올라갈게요. 임 변호사님과 홍찬이에게 거하게 대접하러 올라간다고 해주세요."


 

54. 2015년 크리스마스

재판이 이어졌다.

임병태 회장이 친구인 이민복 대법관 라인을 통해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있었다. 법리적으로 민사적인 것을 무리하게 형사로 가져간 것이라 문제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현직 대법관의 판단이었다.

결심에서 이준혁은 수사에 협조적이라는 이유로 4년 구형, 나는 무죄 다툼을 한다는 이유로 6년 구형이 나왔다.

이미 대학에 입학한 바다와 단 둘이 소주를 마시며 말했다.

"아들, 만약에 아빠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아들이 집안의 가장이야. 엄마, 노을 잘 돌봐야 해."

"대법관님도 민사적인 건을 무리하게 형사로 가져간 거라 문제없다고 하셨잖아요. 잘 될 겁니다."

어린놈이 벌써 사회에 적응한 듯 아빠를 위로해줬다.

* * *

2015 12 24. 크리스마스 이브.

주변에서는 무죄라고 확신하고 이브 파티를 열 음식점까지 예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내면은 속삭이고 있었다. 박정원 사형이 예전에 했던 말. '왜 나한테 물어. 너는 이미 알고 있잖아. 네 내면에 물어봐.'

법정. 판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주문. 피고 주광현을 징역 3년에, 피고 이준혁을 징역 2년에 처한다."

뒤를 돌아봤다. 경악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숙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 짧은 순간 눈으로 말을 전했다.

'괜찮아. 잘 버텨줘.'

이준혁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집행유예를 바라보고 있었던 듯.

'너 때문에 우리 둘 다 헛징역을 사는 거야.'

성호 형도 이미 P철강에서 퇴출되어 있었다.

그렇게 2015년 크리스마스는 악몽이 됐다.


 

55. 교도소 3

구속됐다.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그저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될 뿐,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무덤덤했다.

바다는 군 자원입대했다. 노을에게 부담 주기 싫다고. 노을은 영국 유학의 꿈이 깨지는 상황에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자꾸 아프다고 했다. 숙이가 노을을 지키기 위해 최경익 선배 집 근처로 더부살이를 들어가 등하교를 시켰다고 들었다.

노을보다 숙이가 더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을이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엄마와 딸이 합의를 봤다. 영국을 못 가면 우회하자고. 일본 리츠메이칸으로 대학교를 가고 대학원을 영국으로 가자고. 그렇게 노을은 일본으로 떠났다.

'그래, 그렇게 조금만 더 버텨줘. 아빠가 너무 미안하구나.'

* * *

2016. 교도소 안에서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요양병원이었다. 연명치료를 받고 계신다고 했다. 말씀을 못 하신다고 했다.

면회를 갈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가운 벽 앞에 앉아서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던 분. 겨울에 찬물에 손을 담가 빨래를 비비시던 분. 군고구마를 재 속에 넣어두었다가 막내 손에 쥐어주시던 분.

그분이 지금 말씀도 못 하신 채 누워 계신다.

아버지 마지막 전화가 떠올랐다. '기어이 니 놈이 나를 두 번 죽이는구나.' 그리고 이제 어머니마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었다. 교도소에서 처음 우는 것이었다.

* * *

교도소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독서뿐이었다.

노역 시간 외에 남는 시간을 책 읽는 시간에 몰두했다. 성경부터 불경, 티베트 밀교, 이슬람교, 노자와 장자까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최인호의 길 없는 길. 길 없는 길은 다섯 번 완독했다. 소설 속 불교 서적 이름을 메모해 구매해서 봤다.

영치금을 넣어준 분들이 있었다. 쌍제리에 처음 입주했던 이강수 대표는 매달 20만원씩 꼬박꼬박 보내줬다. 최소한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자금이 됐다. 진짜 고마웠다.


 

56. 나를 깨우는 명상

2016년 여름. 문화일보 신문 광고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나를 깨우는 명상.' 저자는 임연수 교장이었다. 왜인지 끌렸다. 구매를 신청했다. 한 달에 한 번 구매 신청할 수 있는 기회였다.

책을 받아봤다.

나는 우주조차도 있게 하는 일체의 배경으로서, 모든 것을 창조라는 관문이며 모든 것을 바라다보는 관점이다. 나는 우주의 근원이며 형태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성품이나 살아있는 우주적 진리이기에 원하는 그 무엇도 다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오만한 자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열 번을 읽었다. 그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형광펜으로 표시해가며 외우다시피 했다. 노란색, 분홍색, 연두색, 청색, 주황색. 핵심 문구들이 일기장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박정원 사형의 투신의 실체가 느껴졌다.

'에고의 장난에 주화입마에 빠지셨던 거구나. 실체에 다가섰으나 마지막 벽을 넘지 못하고.'

안타까웠다. 그 은산철벽을 넘지 못하셨다는 것이.

교도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나도 그 벽 앞에서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지 않은가. 아이러니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차라리 목숨을 잃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 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하니 두려움이 왔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임연수 교장. 내 인생의 또 다른 스승.


 

57. 숙이의 징역

2018 2. 가석방 대상자가 됐다.

그런데 세상은 아직 나를 잊지 못했다.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통보가 왔다. 새로운 고소 건이 걸려 있다는 이유였다.

하는 수 없었다. 끝까지 채웠다.

2018 12 22. 만기 출소.

교도소 입구에 숙이와 종수, 성현이가 와 있었다. 종수와 성현이는 욕조에 소주를 부어 몸에 붙은 귀신을 털어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냥 숙이의 차에 탔다.

모닝이었다. 낡은 고물 중고차. 그 차가 반가웠다.

* * *

대전 관저동. 다이소 건물 4. 넷째 처남 건물 옥상에 조립식으로 달아맨 다락방.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났다. 교도소 냉골방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침대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런 침대에서 잤으니 어찌 허리 디스크가 안 터질까.'

징역은 내가 산 게 아니었다. 숙이가 살고 있었다. 나는 교도소 안에서 오히려 끼니가 나오고, 자리가 있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숙이는 사회 속에서 혼자 징역을 살고 있었다.

울분이 터졌다.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였다. 저 침대를 바꾸는 것이었다.


 

58. 80 3천 원

교도소 작업장에서 3년을 일해 모은 돈이 80 3천 원이었다.

관저동 가구거리로 갔다. 매트리스를 알아봤다. 기본이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이었다. 메이커는 필요 없다고 했다. 튼튼한 것으로만 골라달라고 사정했다. 깎고 깎았다.

가구점 주인이 봉투를 보더니 말했다.

"80만 원만 받을게요. 이게 가지고 있는 돈 전부인 것 같은데, 3천 원은 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매트리스가 들어왔다. 숙이가 새 침대 위에 올라가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손으로 이불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말했다.

"호호호호, 맨날 억! ! 하더니 호주머니에 꼴랑 3천 원!"

"그래. 꼴랑 3천 원이다. 하하하하!"

수백억을 쥐었을 때는 없던 그 웃음이, 꼴랑 3천 원이 된 그날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충만한 것이 있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 * *

그 이후 숙이는 사업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놀리듯이 말했다.

"맨날 억! ! 하면서 호주머니에 꼴랑 3천 원!"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었다. 그 웃음이 수치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진짜인 것들이 남는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59. 피올라마음학교

출소 후 한국법무보호공단 대전지부를 찾았다.

교도소에서 귀농 창업에 대한 프로그램을 이수했기에 2년 동안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지게차 교육을 받았다. 교통비 월 60만 원을 지원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도 얻었다.

그리고 오매불망 보고 싶었던 피올라마음학교를 찾았다.

교도소에서 책으로만 만났던 임연수 교장선생님을 직접 보게 됐다. 눈물이 났다. 나이 쉰에 눈물이 나다니.

2019 2, 식스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피올라마음학교는 가정 사정을 고려해 헤븐존부터 마스터존까지 장학금 혜택을 줬다.

서울 대치동에서 하는 교육을 오가는 교통비만 있으면 됐다.

임연수 교장선생님의 전국 강연을 쫓아다니며 생생한 생명의 바다 속에 녹아들었다. 목마른 솜처럼 깨달음의 물을 빨아들였다.

2021 12, 마스터존 프로그램을 졸업했다.

명상이 수행이 아니라 삶이 됐다. 에고의 나가 내가 아니라는 것과, 실체적인 나 생명에 눈을 떴다.

그러자 그토록 의문에 싸였던 박정원 사형의 투신의 실체가 완전히 이해됐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분이 걸어간 길 덕분에 내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으니.

 

8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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