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두 번째 무너짐
2013~2016년
"배신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다."
— 화광동진
제44장. 아침바다 빌딩
이준혁과의 일이 묘하게 급물살을
타던 무렵,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다.
새만금 비응도. 동양고속건설 자회사가 개발한 부지에 공사대금으로 한 필지를 분양받아 건물을 올린 사람이 있었다. 1층 분양으로 원금을 회수하고, 나머지 지하 1층과 2층부터 5층까지를
소유하고 있던 박 회장이었다. 건물 이름은 아침바다 빌딩이었다.
박 회장이 건물을 매각해달라고
의뢰했다. 인연의 끈을 잡아당긴 것은 성현이었다. 동양고속건설의
하도급 토목업체 출신이었던 성현이는 나와 안면이 있었고, 이 물건을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첫 미팅에서 사업 구도를 설명했다. P철강 이준혁, 매매대금 지급 구조, 군산 P스틸서비스 자회사의 철자재 여신 한도. 감정가 120억, 매매대금 54억, 기존 전북은행 대출 30억. 24억을 3차례에 나누어 주고 첫 번째 물량 대금을 상환하면 여신 60억이 순환되는 구조였다.
박 회장은 나를 보증인으로
입보시켰다.
내가 보증인으로 들어갔으니
목사 형에게 지분과 감사직을 줄 것을 요청했다. 이준혁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일사천리로 설정에서 업체 등록까지 마쳤다. 너무 빠른 속도가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 * *
그런데 사업이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현대중공업 오더가 늦어졌다. 기성품 납품보다 특수 제작 오더가 주류였다. 생산 일정이 안 맞아
매출이 녹록하지 않았다. 계약서에 적힌 3개월 잔금 약속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준혁이 대전으로 찾아왔다.
"현대중공업 매출이 늦어질 것 같아. 군산에서 제작할 물량이
없어서 큰일이다. 어떻게 해야 하냐?"
"스타트할 조건만 만들어주면 알아서 끌고 간다며 왜 나에게 이야기하는데."
"일단 1차분이라도 돈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매출처가 없어."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보증인으로 들어가 있었다. 보증부터 빼려면 일단 잔금을
치러야 했다. 발을 빼려 해도 빠질 수가 없었다.
결국 철근 납품처를 직접 찾았다. 동군산농협에서 주관하는 고창 아파트 현장. 화진철강산업에서 철근을
납품하고 박 회장이 관리하는 통장으로 결제가 됐다. 그리고 이준혁에게 소유권 이전과 채무인수를 통보했다.
내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제45장. 각서
그러나 이준혁은 소유권 이전을
하지 않았다.
한재근 회장과 궁합이 맞아
짝짝궁 하면서 대표이사를 바꾸고 주식을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법인 인수자를 찾았다. 유준철 회장과 최경익 선배를 연결해줬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려는
순간, 이준혁이 또 딴지를 걸었다.
"광현이가 인수해가면 혹시 법인에 문제가 있어도 나를 보호해 줄 텐데,
제3자가 인수하면 무슨 이유를 대서 걸고 넘어올 지 모르잖아요."
나는 기가 찼다.
"야 이 호로자식아. 니가 똥 쌌으면 니가 치워야지. 왜 인수자가 그 똥을 치워야 해."
한재근 회장이 나섰다.
"광현아! 니가 준혁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각서 하나 써줘. 내가 보관할 테니 걱정 말게."
"제가 인수자가 아닌데 왜 제가 써요?"
"그래도 니 얼굴 봐서라도 저기 최 선생이 아무런 조치 안할 거 아니냐."
"물에 빠진 놈 빼내줬더니 봇다리 내놓으라는 거잖아요."
최경익 선배가 옆에서 재촉했다. 며칠씩 매달린 일이었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나는 마시던 물잔을 던졌다.
"그 새끼 터치 바이 터치 음악 틀고 계단 내려왔을 때 때려 죽여야 했어."
각서를 썼다. 이름 쓰고 무인을 찍었다. 한재근 회장에게 밀었다.
"준혁이에게 주면 안 됩니다."
"알았네. 내가 보관할 테니 걱정 말게."
그 각서가 내 인생을 또 한
번 바꿀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제46장. 이창권 회장의 배신
이창권 회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유프라자 사건 이후 인연이
끊긴 줄 알았는데, 그는 조용히 나를 향해 덫을 놓고 있었다. 김진상
사장을 부추겨 사기로 고소하게 했다. 본인은 쏙 빠진 채로.
그뿐이 아니었다. 자유프라자 유치권 문제에서도 최영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박정원 변호사 사무실을 압박했다. 유치권 포기각서를 받아내려는 것이었다.
박정원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주사형! 주광일이는 왜 또 사고를 쳤다냐? 이창권 회장에게 전화가 왔고, 이 유치권에 관해서는 주광현도 권한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잘 하셨습니다."
유치권 포기각서를 발행해 주는
대신 1층 2개 호실을 유명선 스님에게 소유권 이전해 주는
것으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그것으로 긴 자유프라자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시원섭섭하기도 했지만 홀가분하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런데 이창권 회장은 합의
후에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각처에서 나에 대한 소문을 퍼뜨렸다. 전과자가
사무장을 한다, 사기꾼이다.
나는 알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제47장. 노을의 반란
2014년 봄. 노을이 세종국제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영어로 수업을 한다고 했다. 국제반. 노을이 원하던 것이었다.
세종에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까지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을이
폭발했다.
모집 공고에는 영어로 수업을
한다고 했는데 그게 이행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세종시 교육청에 허위 공고를 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숙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찌 지 아비에 그 딸이 아니라고 할까봐. 어떻게 교육청에까지
투서를 하며 저 난리란데!"
"아이구, 어쩌겠어. 불의에
대한 저항의 피가 흐르는데."
"웃지 마! 학교에서 오라고 하잖아. 당신이 가든지."
"내가 가면 학교 뒤집어 놓을 텐데 그래도 좋으면 내가 가고."
"아냐! 내가 간다. 내가
가. 달래야지. 더 난리치면 퇴학 당한다고."
숙이는 그렇게 노을의 열정적인
후견인이었다. 공립 국제고라 교육비가 얼마나 가성비가 좋은지 모른다며,
울면서도 웃으며 학교로 갔다.
노을은 결국 학교와 협상을
이끌어냈다. 투덜대지 않고 해결을 찾는 아이였다. 숙이를
닮았다.
제48장. 금강하구둑
2014년 늦여름이었다.
박정원 변호사가 충주 재판을
가는 길이었다. 금강하구둑에서 그분이 강물에 투신했다.
사무실 여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떨렸다.
"변호사님이 투신 자살 시도하셨어요. 어떡해요. 빨리 좀 와주세요."
충격이었다. 왜. 왜. 왜.
동군산병원. 의식이 없었다. 119에 실려 왔는데 40분이 지나 건진 것이었다. 골든타임이 지났다. 살아난다 해도 뇌 신경이 괴사가 발생해 식물인간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포기할 수 없었다. 저온 치료라는 최후의 방법을 쓰기 위해 전북대병원으로 이송했다.
'다행이다. 사형이 무너지면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저의 정신적인 기둥인데.'
나흘이 지났다. 저온 치료실 속에서.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살아나도 식물인간이라고 했는데, 어눌하지만 비쩍 말라빠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살아있었다.
* * *
박정원 변호사는 2개월 후 퇴원했다. 아직 육체적 마비가 남아 있었지만, 부축을 받으면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
사모님이 서울 근처에서 요양하며
노후를 보내기를 원했다.
기흥에 아파트를 추천했다. 이준혁이 한재근 회장과 거래하면서 가져오기로 한 아파트였다. 앞에
큰 호수가 있고 서울에도 가까웠다.
박정원 변호사 가족과 함께
아파트를 보러 갔다. 가족 전체가 채식에 입문해 있었기 때문에 사석에서는 사형, 사저로 불렀다.
"아~ 좋다. 이렇게
큰 평수를 그냥 살아도 되나요? 주사형!"
"넵, 준공 단계이니 준공 청소만 하고 입주하면 될 겁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 사람이 살아있는 한,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분이 투신한 이후, 조용히 잠재해 있던 칼들이 한꺼번에 날아들기 시작했다.
제49장. 쏟아지는 고소장
박정원 변호사의 투신 이후, 내게 향한 고소장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첫 번째는 이창권 회장의 꼬임에
넘어간 강진상 사장의 고소였다. 설마 했다. 그런데 왔다.
두 번째는 박 회장의 대리인
박기남이 고소를 해왔다. 그런데 경찰서가 아닌 검찰청 수사과에서 직접 수사가 들어왔다.
세 번째는 양수현 사장도 고소를
해왔다. 예전에 어음을 빌려줬는데 안 막아서 자기가 메꾸다가 부도났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모든 계약은 박정원 변호사
검토를 통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 사무실 인장이 찍힌 계약서가 첨부되면 조사가 느슨해졌다. 정상적인 수임료에 세금계산서까지 발행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수사과에서 직접 조사하는
것은 작정하고 몰아가는 방식이었다. 군산 토착 세력들이 연결된 기획 수사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수사관이 말했다.
"당신! 고도로 진화한 사기꾼! 전과자가 어떻게 변호사 사무장 직함을 써?"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당신은 그럼 고스톱 쳐서 수사관 됐어요? 지금 나에게 한
말 전부 조서에 남겨. 그러면 그 말 그대로 답변해줄게요. 그것도
조서에 남기고. 아니면 녹화실로 가서 조사를 하든지. 군산검찰청
수사과는 조폭들이 조사합니까?"
"이 새끼 봐라! 당장 구속영장 쳐!"
"그래 구속영장 쳐봐라. 나도 이런 조폭에게는 조사받기 싫으니까."
옆의 다른 수사관이 끼어들었다. 나를 휴게실로 데리고 나갔다. 커피를 빼줬다.
"참으시고 일단 가시죠. 추후 다시 연락할 테니."
나는 전북변호사협회 발행 사무원증을
지갑에서 빼서 보여줬다.
"법원 바로 길 건너편에 박정원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입니다."
제50장. P철강 고소장
2014년 봄. P철강의 법무 고문
T 법무법인이 군산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마치 판결문처럼 정교하게 작성된
고소장이었다. T 법무법인의 자원이 총동원된 문서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따로 있었다.
피의자는 나 혼자였다. 실질적으로 일을 주도했던 이준혁은 참고인 자격이었다. 조사도 따로
받았다. 나만 피의자석에 앉혀진 것이었다.
이 구조가 보였다. 고소장 안에는 내가 배신당한 자리가 그대로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나만 남아 있었다.
또 이것인가. 허탈함이 먼저 왔다. 억울함보다 허탈함이 먼저였다.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서울에서 윤길중 변호사가 내려왔다. 실질적인 대표자 행위는 이준혁이
했다는 것, 출금전표상 대표자 지시 서명이 이준혁의 것이라는 것, P스틸서비스와의
철자재 운용에 나는 관여한 바 없다는 것.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그러나 수사는 멈추지 않았다.
* * *
2015년으로 이어지는 대질신문에서 이준혁의 진술은 검찰 측의 방향에 가깝게 정리됐다. 자신은 직원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사주는 나였다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 각서가 증거로 제출됐다. 한재근 회장이 보관한다던 그 서류가, 이준혁을 통해 검사 앞에 나왔다.
외통수였다. 이미 결정된 카르텔의 방향을 어떤 말로도 돌릴 수 없었다.
나는 법정에서 말했다.
"제가 쓴 각서는 법인 인수 과정에서의 면책 서류입니다. 철자재
거래와는 무관합니다."
그러나 재판은 이미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제51장. 두 번째 철창
재판은 2015년에 결론을 향해 달렸다.
나는 밤마다 사건 서류를 들여다봤다. 어디서 무너진 것인지. 어느 틈으로 이것이 들어온 것인지.
알았다. 내가 뿌린 씨앗이었다. 이준혁을 믿은 것. 한재근 회장 앞에서 각서를 쓴 것. 보증인으로 들어간 것. 내 이름이 들어간 모든 서류가 칼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이준혁의 배신, 박 회장의 고소, T 법무법인의 고소장. 그것들은 내가 만들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법은 결과를 봤다. 과정보다 결과를.
숙이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아마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숙이는 한참 창밖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십 년은 늙었어."
그게 다였다. 울지 않았다. 화내지 않았다. 그냥
그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가 어떤 통곡보다
무거웠다.
* * *
판결이 났다.
법원 복도를 나오면서 바닥을
봤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마을 길을 걷던 생각이 났다. 아버지의
솥따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도 나는 사랑하리라.'
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생각이 법원 복도에서 왔다.
가장 낮아지는 순간에 오히려
그 생각이 왔다. 그래도 사랑하리라. 배신당해도. 무너져도. 두 번째 철창 앞에서도.
두 번째 교도소 문이 닫혔다.
첫 번째와 달랐다. 이번에는 분노도 없었다. 억울함도 없었다. 그냥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더 무서웠다. 그 조용함 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사람에 대한 마지막 믿음이었다.
— 제7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