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첫 번째 무너짐
2003~2008년
"무너진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무너진 채로 있지 않았다."
— 화광동진
제29장. 거미줄이 조여들다
자유프라자 계약이 끝나고 나서
찾아온 것은 기회가 아니었다.
다음 날부터 낯선 사람들이
연달아 사무실을 찾아왔다. 대전 유흥업협회장이라는 사람, 익산
건달이라는 사람, 우일종합건설에 돈을 빌려줬다는 사람. 우리는
계약한 적 없다며 만남을 거부했다.
법률 자문을 받았다. 가등기를 치면 문제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왜 동시다발적으로
사람들이 나타나는가. 내 직감은 계속 말했다. 이건 아니다.
소개받은 변호사가 상황을 듣고
말했다. "주사장, 거미줄에 걸렸으니 끊고 나오든지, 아니면 쪽쪽 빨려 죽을 테니 판단해."
계약을 무효화하고 원상회복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깊이 발을 들여놓은 뒤였다.
* * *
2004년, 임광철 회장님이 별세하신 같은 해에 광주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일광종합상사의 12년 장부가 펼쳐졌다. 세금계산서 문제였다. 안전용품 세금계산서냐 상품권 계산서냐의 문제였다. 실거래가 아닌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국세청의 판단은 달랐다.
세무조사가 시작되자마자 1군 거래처들이 일제히 거래를 끊었다. 한 달 매출 10억에서 20억을 오르내리던 회사가 세무조사 이후 1억을 못 넘겼다. 시한부 부도였다.
그래도 끝까지 숨기지 않았다. 세무조사관 앞에서 있는 그대로 말했다. 조사가 끝날 무렵 담당관이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부인 않고 한결같았다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첫 기소는 조세범처벌법이었다. 군산검찰청 담당 수사관은 박 계장이었다. 그런데 나를 아는 척했다.
"학교 어디 나왔어요?"
"김제북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잘 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이 사건에
말렸어요?"
박 계장은 김제북고 2년 선배였다. 그분이 내 조서를 작성하면서 광주국세청의 특가 고발
내용보다 훨씬 완화된 내용으로 써놓고 말했다.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혼자 뒤집어쓰지
마라. 왜 그렇게 미련하게 조사를 받아!"
"배신은 죽기보다 싫습니다. 그리고 다 싫었습니다. 배신하는 인간 군상들이. 그 싫은 군상에 제가 포함될 수는 없잖아요."
박 계장은 한참 나를 봤다. 그리고 덧붙였다. "자유프라자 건도 검찰청에 와 있다. 그 건은 뒤집어쓰지 마라."
제30장. 구속과 보석
2005년 4월. 조세범처벌법으로
구속영장이 집행됐다.
아침이었다. 수사관들이 왔다. 영장을 제시했다.
나는 숙이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이
말했다. 알고 있었다고.
"잘 다녀올게."
"응."
그것이 전부였다. 차를 타고 나오면서 창밖을 봤다. 봄이었다. 나무에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 * *
미결수로 구치소에 들어갔다.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방에 배정됐다. 온도를 가늠했다.
빈자리를 찾았다. 무릎을 껴안고 눈을 감았다.
그때 박정원 변호사가 접견을
왔다.
"얼굴이 좋아졌는데. 봐봐,
술 담배 끊으니까. 어떻게 보면 교도소가 수행하기는 좋은 곳이야."
"차라리 욕을 하세요. H은행 관련 조사가 있어서 일단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보석이라도 신청해 주세요."
"내면의 소리가 그렇게 하라고 그러든가? 아직은 아닌 것 같은데. 이곳에 있는 게 오히려 내면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지 않나?"
"박 계장 말로는 상대 법무팀이 T 법무법인인데, B 지점장을 회유하고 있는 듯하다고 합니다. 나와서 대응을 해야
할 것 같다고요."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야."
결국 5개월 뒤, 다른 경로로 보석이 신청되어 나왔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31장. 두 갈래 길 — 박 계장의 제안
보석으로 나온 다음 날, 박정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그래. 때가 되었나보군. 답은
얻었나?"
"사형! 얻긴 뭘 얻어요. 저도
깜짝 놀랐는데요."
"허~ 그렇지. 이미
준비된 거지. 때가 된 거야."
박정원 변호사는 재판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안 했다. 상대방 반응과 서류 전달 정도가 전부였다. 대신
명상 이야기를 했다. 재판에 신경 쓸 시간에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어려웠다. 그런데 그 말들이 편안했다.
* * *
박 계장을 찾아갔다. 그는 사무실 앞 슈퍼에서 나를 만났다.
"선배님 덕분에 나왔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
계장이 말했다.
"둘 중에 하나야. 니가 B
지점장와 같이 처벌받든지. 아니면 B 지점장에게
떠밀고 자유롭든지."
"그 선택의 차이가 뭔데요?"
"니가 공범으로 처벌을 받으면 H은행에 채무자로 들어간 사람들이
채무를 벗어날 수 있어. 반대로 니가 B 지점장에게 떠밀면
너는 자유로워져. 그런데 채무자들은 그 채무를 떠안아야 돼."
"허얼."
"그냥 떠넘겨. 왜 니가 떠안아!"
"채무자 중에 친동서가 포함되어 있어요. 제가 떠안으면 채무에서
벗어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잖아요."
"임마, 그들이 자기들 욕심에 채무자로 들어온 걸 왜 떠안아! 너 미쳤냐?"
"심각하게 고려해 볼게요. 시간은 얼마나 있어요?"
"B 지점장은 근간 체포영장 떨어질 테고 너와 C 팀장은 불구속
재판이 진행될 거야. 너는 그냥 다 떠밀면 빠져나갈 수 있어."
"제 자신에게 물어볼게요. 부정했을 때 양심에 가책이 없는지."
박 계장이 나를 오래 봤다. 그리고 말했다. "꼭 이렇게 해야만 되겠니?"
제32장. 제주도
— 이별 여행
이종선 사장에게 부탁했다.
"형 가족과 같이 가는 가족여행을 꾸며줄 수 있어요? 제가
가족과 많은 시간을 헤어져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푸켓으로 일정 잡아줄 수 있을까요?"
"너. 왜 그러는데."
이종선 사장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
푸켓 비행기표는 없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이미 만석이었다. 대신 제주도로 일정을 잡았다.
가족들은 즐거워했다. 바다와 노을이 뛰어놀았다. 숙이가 웃었다. 나는 그 얼굴들을 눈에 담았다.
원래 4박5일이었는데 폭설 예보로 하루 일찍 12월 26일에 돌아왔다.
군산비행장에 내려서 뉴스를
들었다. 인도양에 대규모 쓰나미가 발생했다고 했다. 27만
명의 인명 피해. 피해 지역에 푸켓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비행기표가 없어서 못 간 그 푸켓이었다.
내면에 감사했다. 가족을 보살펴 줘서 감사하다고.
제33장. 처벌을 자처하다
제주도에서 돌아와 박 계장에게
연락했다.
"박 선배! 결정했습니다. 같이
처벌받겠습니다."
"임마! 왜? 너는
부인만 하면 되는데."
"다른 채무자 다 떠나서 친동서가 포함되어 있어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집사람과 처형 간 다툼이 발생할 겁니다. 그것이 첫 번째이고요."
"그래도 그렇지. 왜 니가 떠안어."
"형! 형이 그랬잖아요. 상대가 T 법무법인이라고요. T 법무법인이 바라는 게 뭘까요? 제가 빠져나가면서 채무자들이 생기는 게 아닐까요? 제가 회피하기를
바라겠지요. 그래야 정상적인 대출이니 B 지점장이나 C 팀장이 벗어나고 채무자들에게 덤태기 씌울 수 있는 거지요."
"야 임마, 그래도 너 먼저 빠져나가야 다음을 보는 거잖아."
"아니요. T 법무법인에서 쳐놓은 덫에 걸리고 싶지 않습니다. 부인하고 벗어나면 이제는 사기로 저를 고소하겠지요. 은행을 사기쳤다고요. 사기로 독박 쓰기보다는 은행 직원의 배임에 공범이 낫지 않을까요?"
"허~ 그것까지 본 거니?"
"제가 죽어야 사는 길이라구요. 형! 처벌을 받을 테니 시간은 벌어주세요. 그리고 최대한 줄여주세요."
"알았다. 이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지?"
"저 이미 가족과 이별 여행 다녀왔습니다."
* * *
박정원 변호사를 찾았다. 나의 의도를 말했다.
"사형! 저 스스로 죽으라고 저의 내면에서 말합니다."
"그래!"
"제가 처벌을 받을 테니 채무부존재 소송을 해주십시오."
"그래."
"제가 처벌을 받을 때까지 집사람에게는 제가 억울한 상황이라고 해주십시오. 저는 이번 기회에 내면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드디어 내면의 소리를 들었구나."
"네. 제가 뿌린 씨앗 제가 거두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주사형! 허허허."
다른때는 뭐라고 하던 박정원
변호사가 그날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친동생을 대하듯 따뜻한 위로를 해줬다.
제34장. 불구속 재판, 그리고 채무가 벗겨지다
B 지점장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C 팀장과 나는 불구속 재판을 받았다.
선고가 났다. B 지점장은 6년 구형에 3년
실형. C 팀장은 4년 구형에 2년. 나는 3년 구형에 1년 6개월의 실형이 떨어졌다. 조세범처벌법의
집행유예를 취소하고 1년 6개월의 실형. 조세범처벌법으로 살았던 5개월을 감안한 처벌이었다.
배임의 공범으로 불구속 재판을
받는 동안 채무부존재 소송이 진행됐다. 배임의 형사재판 대법원 확정이 되면서 그 판결문이 채무부존재
소송에 접수됐다. 채무부존재 소송이 승소했다. 채무가 다
벗겨졌다.
박 계장의 말대로였다. 내가 처벌을 받음으로써, 채무자들의 채무가 사라졌다.
숙이에게는 그 소송이 끝난
후에 박정원 변호사가 전달했다. 내가 왜 처벌을 자처했는지를.
솥귀의 역할이었다.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역할.
* * *
교도소에 들어갔다.
교도소 안에서 책을 읽었다. 명상에 관한 서적을 읽고 또 읽었다. 성경부터 불교, 도덕경까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려 했다.
숙이가 면회를 왔다. 유리벽 사이로 마주 앉았다. 수화기를 들었다.
"밥은 먹어?" "잘 먹어." "바다가 아빠 보고 싶다고 해." "응."
"우리는 괜찮아."
괜찮다는 말. 그 말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눌려 있는지. 나는 알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제35장. 2008년 2월, 출소
1년 6개월을 채웠다. 만기
출소였다.
2008년 2월. 교도소
정문이 열렸다. 바깥으로 나왔다.
혼자였다. 그 문을 혼자 걸어 나왔다.
바람이 불었다. 교도소 안에서는 맡지 못하던 그 바람의 냄새. 흙 냄새가 섞인, 바깥의 공기였다.
그동안 가족에게 벌어진 일들이
조금씩 들려왔다. 숙이가 신용불량이 돼 파산면책을 신청했다. 바다와
노을을 처가 쪽 도움으로 키웠다. 집도 경매로 날아갔다.
징역은 내가 산 게 아니었다. 숙이가 살고 있었다.
나는 교도소 안에서 오히려
편했다. 끼니가 나왔다. 자리가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숙이는 사회 속에서 혼자 징역을 살고
있었다.
* * *
박정원 변호사를 찾아갔다.
"오~오. 주사형! 어디 좀 보자."
내 눈을 깊게 뚫어져라 보더니
말했다.
"많이 깊어졌구나. 명상에 진보가 있었어. 그런데 분심이 가득한데."
"다 내려놓았다 생각했는데, 이 분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움직일 경비조차 없는데 제가 은행을 사기쳐서 몇십억 빼돌려 놓았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허허허."
"그냥 다 잊고 공부나 더해. 아직 업장이 다 소멸되지 않은
게지. 내 밑에서 사무장 일 하면서 업장을 소멸시키게. 생활비는
급여로 지급해 줄 테니."
박정원 변호사 사무소 사무장으로
새 출발을 했다. 2008년 10월이었다.
첫 번째 무너짐이 끝났다. 재건이 시작됐다.
— 제5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