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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첫 번째 제국 1993~2004년 "가장 빛날 때 가장 공허했다." — 화광동진

자서전 · · 약 12분 · 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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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광동진(和光同塵) 프로젝트

4

첫 번째 제국

1993~2004

"가장 빛날 때 가장 공허했다."

화광동진


 

21. 삐삐와 공중전화의 사랑

숙이와의 연이 끊기지 않았다.

서울과 군산, 4시간 거리. 삐삐에 비밀번호 5252가 찍히면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100원짜리 동전이 다 떨어질 때까지 통화했다. 목소리가 안 좋으면 바로 봉고차를 타고 올라갔다. 숙이가 출근하려면 갈아타야 하는 신당역에 새벽에 도착해 운전석에서 눈을 붙이다가, 얼굴 보는 15분 출근길을 멍하니 아쉬움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바로 군산으로 내려와 또 일을 했다.

주변에서는 말렸다. 어린 나이에 불장난이라고. 숙이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말릴수록 더 애달팠다.

* * *

1994년 봄, 셋째 형이 교통사고를 냈다. 피해자 중 임신부가 있었다. 음주에 종합보험도 없었다. "막둥아! 큰일 났다."

실크스크린 작업을 하다 말고 뛰쳐나갔다. 한 시간 거리를 40분에 주파했다. 현장 근처에 조용히 누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구속영장 심사에서 아세톤 약품 냄새와 졸음운전을 설명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합의금 2천만 원. 결혼 준비로 2년 모아야 할 돈이었다. 판단은 금방 끝났다. 돈은 벌면 된다. 합의서를 제출하고 기차를 탔다. 숙이를 보러.


 

22. 양아버지

임광철 회장을 처음 찾아간 것은 스물다섯 살 때였다.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상품권 유통 사업을 하시던 분이었다. 제화 상품권이 필요했다. 금강제화, 에스콰이어, 엘칸토. 기업체 명절 선물로 가장 잘 나가는 것들이었다.

오토바이 배달료 대신 인삼주를 직접 들고 갔다. 회장님이 나를 보더니 허허 웃으시며 앉으라 하셨다. 그 자리에서 거래가 됐다. 노마진에 가깝게 주되 외상은 없다는 조건이었다.

"주실장! 노마진인데 고속버스 배달료도 안 나와."

". 배달료 추가로 보내겠습니다."

"됐네. 자네 코묻은 돈 받을 만큼 인색하지 않아. 열심히 팔어. 장사 끝나고 올라와서 술이나 사!"

그날 이후 회장님은 나를 양아들이라고 불렀다. 나도 아버지처럼 모셨다.

* * *

회장님에게는 춘삼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이었다.

한번은 석촌호수 앞에서 회장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춘삼이는 바다를 가고 싶어했어. 그런데 한 번도 같이 가질 못했지. 이 작은 호수를 보면서 마음의 고요를 느끼는데, 바다를 보면 또 어떤 느낌일까. 바다를 한번 보고 싶구먼."

회장님의 눈이 호수 위에 머물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23. 신혼여행은 유통거래처 순회

1995 1 1. 새해 첫날. 결혼했다.

숙이의 집안은 보수적이었다. 장인어른은 삿갓에 도포를 입는 선비였다. 중매결혼이 당연한 집안에서 연애결혼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숙이가 임신한 상태였다. 처갓집은 문전박대를 했다. 숙이는 나를 따라 나왔다. 갈 데가 없어서 김제 본가로 갔다. 아버지가 말리셨다. "임신했는데 어디를 나가냐. 어여 들어가 쉬어라." 예물도 혼수도 없이, 결혼만 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신혼여행은 유통거래처 순회였다. 남원, 부곡하와이, 부산 해운대, 대구, 경주, 풍기, 금산. 이덕수 사장에게 정산하고 임 회장님께 인사드리는 일정이었다. 임신 중인 숙이가 군말 없이 따라왔다.

88고속도로 육십령고개를 넘을 때였다. 눈이 쌓인 길을 조마조마하며 운전하는데, 앞에 가던 쌍용 무쏘가 다른 차를 들이받았다. 간신히 피해 곡예운전을 하는 순간 숙이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무쏘 박았당! 무쏘 박았당~!"

"우악! 배 속에 아이는 어쩌라고!" "깔깔깔!"

그렇게 행복했다. 신혼집은 세 평 단칸방이었다. 화장실은 축사 옆 푸세식이었다. 임신 중인 숙이가 밤에 화장실 가기 무섭다고 하면 방문 앞에서 기다렸다. 외풍이 심했지만 꽉 붙들고 자면 서로의 체온이 이불보다 나았다.


 

24. 3주에 1 5천만 원

명절 선물 전쟁이 시작됐다.

이덕수 사장의 인삼·꿀과 임광철 회장의 상품권. 그 조합을 보험회사와 건설현장, 기업체 총무들에게 제안했다. 김제 본가에 차 뜨기 물량이 쌓였다. 숙이와 어머니, 아버지까지 포장을 했다. 밤을 새웠다.

이덕수 사장의 정관장 PB 상품이 대박이었다. 50퍼센트 할인에 100퍼센트 마진. 2주 동안 폭발적으로 납품했다.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직원들 몫까지 다 내놨다.

3주 매출 1 5천만 원.

세 평 단칸방에 사는 부부가 명절 3주 만에 만들어낸 숫자였다. 이덕수 사장에게 현금을 들고 금산으로 달려갔다. 임 회장님께는 설 당일 서울로 올라가 인삼주와 인삼정과를 들고 인사를 드렸다.

"자네는 참으로 걸물일세. 처음 인삼주 들고 찾아온 놈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허허 웃으시는 그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5. 바다와 노을

1995 6 6. 현충일이었다.

아들이 태어났다. 제왕절개였다. 나오는 중에 팔이 꼬였다. 어깨뼈가 골절됐다. 아이 손을 보면서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름을 지으면서 임 회장님 생각이 났다. 석촌호수 앞에서 하셨던 말씀. 춘삼이와 함께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셨던 그 말.

임 회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손자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명을 바다라고 지었습니다."

"뭐야! 내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더니 바다로 지은 건가? 사내 이름이 바다는 그렇잖아."

"한자로 지었습니다. 붉을 주, 아침 단, 바다 해. 해 뜰 때 아침 바다의 노을입니다."

"허허~ 걸물일세. 어떻게 이름 하나에 모두의 염원을 담는다는 말인가."

아들의 아명은 그렇게 바다가 됐다.

* * *

1997, 딸이 태어났다.

두 살짜리 바다에게 물었다. "동생 이름이 뭐가 좋아?" 바다가 말했다. "노을!"

노을. 한자로 풀었다. 붉을 주, 해 뜰 정, 노을 하. 해 뜰 때 붉게 물든 노을.

임 회장님께 알렸다. "딸래미 이름은 노을입니다."

"~ 탁월하군. 정동진 동해 바다 일출을 보는 듯하이! 바다와 노을. 이제 자네 집에 바다도 있고 노을도 있구먼."

바다와 노을. 이제 네 식구였다. 숙이가 혼자 두 아이를 감당했다. 군말 한마디 없이. 이 사람이 버텨주기 때문에 내가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


 

26. 안전용품과 토목현장

사업의 외연이 넓어졌다.

전국에 대규모 토목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주-군산 전용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장항선, 새만금. 현장이 곧 시장이었다. 안전간판은 공사가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필요했다. 일광상사는 일광종합상사로 이름을 바꿨다.

아침에 군산에서 현장을 보고, 점심에 전주에서 계약서를 쓰고, 저녁에 서울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그것이 하루였다. 사무실 직원이 열 명이 넘었다. 차는 그랜저였다. 어머니 생신에 백화점 코트를 사드렸다.

그런데 어느 밤,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을 때였다. 숙이가 부엌 식탁에 앉아 있었다.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창 너머 가로등 빛에 얼굴이 반쯤 드러나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 행복하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코트를 벗다 말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행복하다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목에서 걸렸다. 그 질문 앞에서 내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숙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더 열심히 일했다. 더 많은 계약을 따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지워지지 않았다.

가장 빛날 때 가장 공허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27. IMF를 버티다

1997년 겨울, IMF가 왔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 환율이 치솟고, 금리가 올라가고, 대출이 막혔다. 거래처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두렵지 않았다. 가난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한 번 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또 다른 바닥이 와도 몸이 기억했다.

버텼다. IMF가 오히려 경쟁을 정리해줬다. 버티지 못한 업체들이 쓰러지면서 살아남은 업체들에게 일이 몰렸다. 일광종합상사는 버텼다.

임광철 회장님도 IMF의 파고를 함께 건넜다. 화곡동 대형 창고에서 덤핑으로 나오는 안전용품 원자재를 챙겨주셨다. 제조공장이 어려울 때 원가 이하로 쏟아지는 물건 리스트를 미리 보내주셨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분이 챙겨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 * *

한번은 임 회장님을 모시고 선유도로 나갔다. 해경 순시선 엔진이 멈추자 적막이 밀려왔다. 회장님은 낚시를 하지 않으셨다. 그냥 먼 바다를 음미하셨다.

"춘삼이 생각하셨어요?"

회장님은 대답 없이 바다를 보셨다. 그 뒷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저 모습이 먼 훗날의 내 모습일까. 마음이 슬펐다.


 

28. 양아버지가 떠난 날

2003 10, 자유프라자 이야기가 들어왔다.

군산 나운동의 120억짜리 미완성 건물이었다. H은행 지점장이 직접 내려왔다. 은행 측에서 보증을 서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꺼림직했다. 건물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너무 복잡했다. 전국구 조직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은행에서 조건을 제시해온 바로 그날 임광철 회장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이 우연의 일치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팀원들에게 공론화했다. 찬성이 다섯, 반대가 하나. 반대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수결이었다. 진행하기로 했다.

* * *

2004 1. 자유프라자 잔금을 치르는 날이었다.

나는 잔금 치르는 현장에 가지 않았다. 일부러 서울 일정을 잡았다. 임광철 회장님 병문안이었다.

세브란스병원. 바다와 노을을 데리고 갔다. 회장님은 전용 1인실에 누워 계셨다. 산소호흡기가 씌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했다.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빨리 눈 떠봐요."

아이들이 울음 섞인 소리로 불렀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날 오후 성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광현아! 잔금 다 치렀다. 등기 넘어왔어. 이제 자유프라자 우리 거야!"

전화를 끊자마자 또 다른 벨이 울렸다. 변호사였다.

"주 실장... 방금 회장님께서 운명하셨네. 자네가 떠나고 나서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어."

성준이의 환호성과 변호사의 낮은 목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120억짜리 빌딩이 손에 들어온 날. 양아버지가 떠난 날. 두 소식이 같은 순간에 날아왔다.

* * *

장례를 마치고 고군산군도로 나갔다.

회장님은 바다를 좋아하셨다.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 해가 지는 방향이었다. 해경 순시선 엔진이 멈추자 적막이 밀려왔다.

납골함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가볍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춘삼이를 그리며 허리 굽혀 살던 무게가 이리도 가벼울 수 있을까.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뚜껑을 열자 백골가루가 바람에 실렸다. 노을빛이 재 위에 내려앉았다. 황금빛과 주홍빛이 뒤섞인 서해의 석양이 찬란했다.

이제 나는 진짜 혼자였다. 내 뒤를 봐줄 어른이 이 세상에 없었다. 그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똑바로 인식했다.


 

 

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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